「동국여지승람」에 의하면, 동국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이 있고, 그 바위 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(金色)에다 물속에 범천(梵天)의 고기가 놀았다.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(金井山)이라 하고, 절을 범어사라 하였다.
선방 뒤에는 고통의 환영인지 침묵의 소리인지 모르지만 소리가 있다. 길거나 짧게 혹은 곱기도 하고 거칠기도 한 대밭의 소리다. 더불어 자비, 천년의향기로 쉼 없이 범어사를 감싸 안은 향나무가 숨 쉬는 지혜로운 곳이다. 고요한 대웅전 앞 삼층 석탑을 지나면 언덕아래 숨겨진 기와집이 있고 그집 동안거 선방의 넓은 방 문간 옆에는 90세 할머니가 삼매에 들어서 번데기 같이 웅크린 모습이다. 달빛이 그냥 볼 수가 없어 뜰 앞 매화가지로 죽비를 만들어 깨워본다. 할머니는 한 호흡으로 미닫이 문을 조용히 열어본다, 골짜기 타는 업의 바람이 급히 엉키는 순간 솜 옷 다잡으며 움츠리는 속눈썹 끝에 한 점이 매달린다. 그 틈새로 달이 스며들고 달 속에는 시집 올 때 타고온 가마 속에 곱고 순수한 신부 마음에 반사 되어 미묘한 해방됨의 흔적은 수정 속의 그림자로 한 찰라 머물러 본다.
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업은 뚝 떨어져 선방 마당 마사흙 속으로 스며들고 옆방스님 차물 끓이는 소리는 해탈의 꽃으로 피어난다.
